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작년 9월 제5차 평가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배출량의 70% 수준까지 감축해야 지구 평균온도 상승 한도를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2℃로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4년 9월 23일, 미국 뉴욕에서 120여 개국 대표가 참석하는 UN기후정상회의가 열렸다.
제69차 UN총회 기간 중 진행된 기후정상회의에서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개막연설을 통해 기후변화를 앞당기는 행동에 대한 제지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각국의 비상한 노력을 촉구했다. ‘두 번째 행성(Planet B)이 없기에 기후변화에 대한 차선책(Plan B)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며 이번 세기가 끝날 즈음에는 전 세계가 탄소제로(Carbon Neutral)에 도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UN기후정상회의 개막 현장 >
주요 이슈 - 2020년 이후를 위한 사전준비
이번 기후정상회의는 2020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는 2015 신기후협정 타결에 앞서 국제사회의 정치적 의지를 결집시키고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개최됐다.
기조연설에서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40% 줄이고 전력의 27%를 대체에너지로 생산하며 에너지 효율 또한 30% 높이겠다고 제안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Jose Manuel Barroso) EU 집행위원장은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돕기 위해 30억 유로(약 4조 172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또한 빈곤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강조하며 1조395억 원에 달하는 기후기금을 기여하겠다고 전했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2020년까지 미국의 탄소 배출량을 2005년을 기준으로 17% 줄이겠다고 밝혔다. 또 기후변화 대응에는 어떤 나라도 무임승차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세계 최대 오염 배출국인 중국의 동참을 촉구했다. 미국은 지난 6월 2030년까지 자국 내 화력발전소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30% 감축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스티븐 하퍼(Stephen Harper) 캐나다 총리는 리오나 아글루카크(Leona Aglukkaq) 환경부 장관을 대신 보냈다. 캐나다는 지난 6월 “기후변화가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나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 중 유일하거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밝히며 탄소세를 폐지한 호주와 기후변화에 대한 입장을 나란히 한 적이 있다. 아시아 국가 중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1, 2위를 차지하는 중국과 인도 또한 국가원수 대신 대표단이 회의에 참석해 아쉬움을 남겼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정상회의가 열린 9월 23일을 “역사적인 날이다. 이렇게 많은 국가 대표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약속했다”며 올해 말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0)에서 신기후협정에 관한 초안을 마련하고, 1년 뒤인 내년 말 파리에서 개최되는 COP21에서는 모든 나라가 참여하는 신기후협정을 완성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세계 속의 한국 - 선진국과 개도국의 가교 역할
박근혜 대통령은 UN기후정상회의 전체회의 세션에서 기조연설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120여 국가 대표들에게 기후변화 대응을 창조경제의 핵심과제로 삼아 신성장동력을 창출하려는 우리나라의 노력을 소개하고, 신기후체제 협상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의 가교로서 적극 참여하고 개도국의 기후대응 역량 개발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후에 열린 '기후재정(Climate Finance)' 세션에서는 공동의장직을 맡아 녹색기후기금(GCF, Green Climate Fund) 사무국을 유치한 국가의 정상으로서, 개도국의 기후 대응을 위해 공공·민간부문의 재정지원을 강조하고 참석자들의 적극적인 행동을 이끌어내고자 노력했다.
24일 오전 UN총회에서 진행했던 기조연설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박 대통령은 △국제평화와 안보 △인권증진 △사회·경제적 개발이라는 UN의 3대 임무를 수행하는 반기문 사무총장의 활동을 지지하고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기여 의지를 천명했다.
앞으로의 기후변화 - 더욱 강력한 기후변화 대응체제 구축
120여 개 국가의 정상들과 800여 명의 경제, 금융계 전문가 및 시민단체 리더들은 올해 말 리마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이번 정상회의의 막을 내렸다. UN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세계 리더들의 합의를 이끌어냈으며 온실가스 배출 감축과 환경의 탄력성 회복을 위해 각국의 노력을 다짐받았다.
40여 개국, 30개 도시, 10개 이상의 기업들은 온실가스 감축 노력뿐만 아니라, 차량 연료, 조명, 가전제품, 건축물 및 사회기반시설 등에 소비되는 에너지를 관리해 2030년까지 전 세계 에너지 효율을 2배 높이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또한 정부의 적절한 규제를 통한 탄소 시장과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해 기후변화 대응책을 모색하기로 약속했다. 73개 정부와 11개 지자체, 1,000개 이상의 기업과 투자자들은 탄소세를 지지했으며 시장의 구체화를 위한 연합체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이들 중앙‧지방정부와 기업, 투자자들을 모두 합하면 세계 GDP의 52%,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의 54%,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
정상회의가 열린 9월 넷째 주, 뉴욕에서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2014 UN기후주간(Climate Week)’의 일환으로 맨해튼에서만 약 60만 명이 참여하는 사상 최대의 기후변화 거리행진이 진행됐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은 물론 UN평화사절로 임명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 전 미국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Al Gore) 환경운동가, 빌 드 블라지오(Bill de Blasio) 뉴욕시장 등 저명인사들도 행진에 참여해 전 세계 시민들에게 기후변화 대응의 필요성과 긴박함을 어필했다.
< 거리 행렬 중인 반기문 UN사무총장과 세계 각국의 기후변화 행동 촉구 모습 >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체결된 1997년 교토의정서가 큰 성과 없이 효력이 만료되었고, 2009년 코펜하겐 UN기후변화회의에서 후속 협약을 마련하려 했지만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올해 12월 페루 리마와 내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통해 앞으로의 기후변화 대응체제에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한다. 기후변화 문제의 긴급성을 깨닫고 지금 바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참여해야 단 하나뿐인 지구에 변화가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않도록 하자.
참고 : UN기후변화(un.org/climatechange), 뉴욕시 기후주간(climateweeknyc.org)
